츠네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깜깜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데굴데굴. 데굴데굴. 데굴데굴....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우리는 모두 조제이자 츠네오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조제이고, 그는 츠네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하지. 너도, 나도,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다른 이들도 조제가 그랬듯, 쿵, 다이빙하듯이 매일 삶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거.
쿵. 쿵.
'곤두박질'이란 단어가 주는 처참한 기분은 아니다. 어차피 내 안의 장애와 부족함들 중 몇은 내 힘으론 절대 극복되지 않는다. 잘 알고 있다.
그 깜깜하기만 한 곳에서 그를 만나 조금 헤엄쳐올라온 것.
그걸 두고 누군가는 "연애"라 하고 누군가는 "성장"이란 이름을 붙인다.
연애, 성장. 무엇이 되었든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꼭 겪는 과정을 통과하는 어린 연인 앞에서 가슴이 서늘해진 건, 그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걸 할 때 가졌던 마음. 오래도록 끝 중(中)에 있었던, 얼핏 잔잔했지만 분명 긴 떨림으로 울고 있었던 그 마음이 너무나 생생히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난 부족해. 네가 채워줘." ‥‥ 내 사랑에 대한 쓴 반성.
처음엔 숨기려 무진장 애를 쓴다. 다리가 불편하다고 내 모든게 모자라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책에서 봤던 오존이니, 화학이니 이야기를 술술 해대며 기선을 제압하자.
완벽한 것이 매력적이라는 무생물적 가치는 그렇게 자꾸 나를 위장하게 만든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으며 그리하여 아름다운 것이란 좌우대칭의 극인 타지마할 정도일 뿐이다. 허나 그 타지마할의 잔혹한 비화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집 앞에 온 그의 전화에 허겁지겁 화장을 하고, 눈을 마주칠 때면 눈꼬리가 말리게 배시시 웃어대며, 내 커리어와 가치관에 꿀 살짝 발라 이야기 하는 건, 정말 닿고 싶은 마음 바깥에 한 겹, 두 겹 쌓이는 철문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도 너와 나는 독립된 개체이며, 따라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자고 소리높였다. 내 치부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어두운 마음과 아픈 기억도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가장 나누고픈 마음들을 그렇게 묻어두려 했다. 두려워서.
내 부족함에 실망하지 않을까, 떠나가지 않을까, 부담 느끼지 않을까...
조제는 달랐다. 이기적이었다. 어쩌면 조제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다시는 이런 사랑을 못할지도 몰라"
우리가 구태의연한 연애에 빠질 때마다 매번 눈을 빛내며 하는 그 생각 말이다.
조제는 솔직했다. 휠체어를 사자는 츠네오는 "언젠가는 나도 늙어"라고 했지만, 조제는 그 날은 오지 않을 것임을, 아니, 그날이 왔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있지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온 존재를 그의 등에 실었던 것이다.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렇게 온 존재를 맡기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호랑이도 함께 보는, 그런 사랑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데굴 데굴. 데굴 데굴...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 이별 그 후.
당연히도 두 사람은 헤어진다. 어차피 모든 사랑은 끝이 난다. 과격한가? 단어를 바꿔보자. 모든 연애는 종국에는 끝나게 되어 있다.
츠네오가 조제의 통째 영혼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일 수도 있고,
우연히 다시 만난 옛 연인 때문일 수도 있고,
츠네오의 말처럼, 그저 그가 도망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다만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래는 [키미코]인 조제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따온 사강의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야.
이별 그 후, 그의 등에서 내려온 조제는 전동 휠체어를 산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낮에 시장을 보러간다. 신새벽에 칼을 쥐고 유모차에 숨어 산책을 했던 조제가 아니다. 그 곳에서는 이미 헤엄쳐 나왔다.
약간의 빛, 약간의 소리, 약간의 바람, 약간의 비까지.
조제는 츠네오와 경험했고, 손잡아주었던 그가 사라진 뒤 길 잃은 조개껍질이 되었다.
Last Scene은 부엌에서 생선을 굽는 조제의 뒷모습이다.
철망에 작은 고기를 정성스레 구워 접시에 옮겨담은 조제의 뒷모습은 쿵,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사라진다.
다이빙을 한 것이다.
그녀가 사라진 부엌만이 덩그라니 남은 화면에 조제의 팔이 쑥 올라와 생선접시를 내린다. 그리곤 슥. 슥. 기어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슬퍼서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내내 눈물이 났다.
전동 휠체어나 좋아했던 생선을 구워먹는다는 사실이나 햇살 받아 길을 나서는 데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못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조제도 나도.. 다시.. 다이빙하며 살고 있구나.
이제 저 아래에 츠네오는 없구나. 그녀가 기어가는 소리는 차라리 데굴 데굴. 데굴 데굴. 조개 껍데기가 해저의 모래와 맞부딪히는 소리로 들렸다.
이별 그 후. 그의 부재와 다시 쿵, 떨어지는 내 삶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구나.. 하며 나는 울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조제의 말대로, 그건 그런 대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다이빙을 하고, 그는 사라졌어도
한 뼘, 혹은 두 뼘 헤엄쳐 올라온 그 성장으로 조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건 정말 그리 나쁘진 않고, 나는 오늘도 데굴 데굴 구르며 살고 있다.
데굴 데굴. 데굴 데굴....
네이버 영화 리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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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그리울 사랑의 기억 잊혀지질 않아 그 겨울, 바닷가...
#조제와 나의 추억의 한장면
츠네오의 생각은 이런 감정이지 않았을까?
"어떤 여자를 사랑했어요. 섹스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눈을 바라보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아까워 지지가 않게 되죠.
그리고 이 여자에게 사랑하다고 말하게 돼요.
시간이 지나면 난 이 여자가 부모님같고, 형제같고, 친구같고, 이 여자가 나의 모든것이 될 수는 없지만, 세상 누구 보다도 이 여자가 걱정이 되기 시작해요.
어떻게 해서든 이 여자가 행복하고, 더욱더 똑똑해지고 무조건 잘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너무 걱정이 되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플까봐,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까봐 너무 걱정이 돼요.
그렇게 점점 내 사랑은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게 돼요.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절 점점 더 억누르죠. 시간이 지나고, 오래된 연인들에게 생기는 그런 흔한 문제점들과 이 여자에 대한 걱정들로 전 숨을 쉴수가 없게 돼요.
결국은 전 이런 모든것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져요. 이젠 더 상 그녈 사랑할 힘이 남아 있지않다고 결정을 내려요.
이기적이지만 저에겐 정말 커다란 힘든 결정이죠. 어쩌면 사랑하는게 아니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난 그녀와 헤어져요.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눈물이 나요.
너무 걱정이 되서요. 내가 그동안 옆에서 얼마나 잘해주었는지,그녀가 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알고 있는데, 힘들어 할 그녀를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질 않죠.
그녀도 언젠간 혼자 잘 살테죠. 저도 언젠간 잘 살거구요.
하지만 그녀가 보고싶어도 이젠 볼 수가 없을거예요.
그녀가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거고, 또다시 하나씩 걱정 되고 슬픈건, 내가 없으면 또다시 시작할 그녀의 나쁜 습관들이 생각이 나고, 내가 없으면 그녀가 어떻게 되어버릴지 뻔히 보이는.. 또 그런 뻔한 사실을 알고 있는 내 자신.. 그녀에게 도망치는 기분, 그녈 버리는 기분, 그녀를 걱정한다면서 그녀를 제일 슬프게 만드는게 내 자신이라는 사실들... 이기적인 내 자신.. 그런데 왜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는지는 내 자신도 알 수가 없어요.
지금은 설명을 못하겠어요. 어쩌면 난 다시 그녀에게 돌아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난 언젠가 다시 그녀를 버리고 그녀를 또 힘들게 할게 뻔해요. 그래서 난 그녀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이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해요. 난 그녀를 버렸으니까요. 하지만 난 아직도 그녀가 걱정이 되고,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죠.
또 다른 리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조제, 에테르 그리고 릴리슈슈
1
츠네오는 에테르를 느낄 수 없다. 애인과의 섹스는 배고플 때 먹는 스파게티같이 무의미하고, 가슴 큰 (또다른) 그녀는 자꾸 섹스를 하려하지 않는다. 마작에서 좋은 패가 들어올 때는 대타로 뛸 때고, 그 사이사이엔 사람들의 시덥잖은 농담뿐. 츠네오는 에테르를 느낄 수 없다. 그때 그에게 쿠미코가 왔다. 심술궃은 표정에, 손에는 식칼을 들곤, 골방의 주운 책으로,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골목길의 파편화된 흔적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던. 츠네오의 릴리슈슈.
2
하지만 쿠미코가 츠네오의 릴리슈슈였던 것처럼, 츠네오도 쿠미코의 릴리슈슈였을지 모른다. 그가 쿠미코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세상을 배웠던 것처럼 쿠미코도 츠네오를 통해 더 많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치 시게루가 바다에 끌렸던 것처럼(주:시게루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주인공 이름) 그렇게 츠네오는 쿠미코에게 끌렸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츠네오가 쿠미코와의 섹스 앞에서 한번도 흘려보지 않았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것이 채워줄 수 있었던 에테르와 그것이 츠네오에게 가져다 주었던 더 큰 우주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와 섹스하고 손잡고 여행하던 그 모든 순간이, 숨막히던 골목길에서 드넓은 바다로의 여정이 되었고, 쿠미코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거울이 되었고, 또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로코코 속엔 폭풍전야의 불안감이 잠재했던 것처럼, 죽음과 탄생이 언제나 함께했던 그 넓은 바다처럼, 언제나 그녈 안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불편한 쿠미코의 다리가 어느 순간 츠네오 어깨의 커다란 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자신의 에테르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녀의 존재가 어느 순간 휠체어의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항상 쿠미코의 손을 잡고 그녀 현실의 두려움이었던 호랑이를 보고, 상상 속 동경이었던 물고기를 만지고 싶었는데, 이제 심연에서 굴러다녀야 했던 그녀의 무게를 쿠미코의 중력을 느끼게 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어두움의 두려움과 함께.
3
그래도 츠네오는 쿠미코가 고맙다.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주었고, 한번도 채워본 적 없었던 에테를 주었고, 그의 릴리슈슈가 되어주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와의 이별은 담백한 이별일지라도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 그녀와의 섹스에서 츠네오가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던 그 모든 기억들이 이제 이 눈물과 같이 사라져 버릴까봐. 그리고 쿠미코없는 그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에테르를 애타게 찾게 될까봐. 그리고 그가 예전처럼 돌아가듯, 남겨진 쿠미코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버릴까봐. 이젠 다시 조제가 될 수 없을까봐. 이젠 다시 호랑이를 볼 수 없을까봐. 이젠 다시 물고기를 그릴 수 없을까봐.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 쿠미코 혼자 남겨질까봐.
하지만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쿠미코는 여전히 의자에서 떨어지니까.
안녕. 조제, 에테르 그리고 릴리슈슈.